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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120cm의 서울을 걷다 여행이란 새로운 감각을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그 감각은 공간을 바꾸는 데서 오는 것이기도 하지만, 시선을 바꾸는 데서도 찾아올 수 있습니다. 이번 여행은 후자에 해당합니다. 내가 가본 적 없던 장소가 아니라, 내가 보지 못했던 시선으로 익숙한 공간을 다시 바라보는 실험이었습니다. 주제는 ‘초등학생의 하루를 어른의 발걸음으로 따라가기’. 한 초등학교 2학년 아이의 하루 생활 반경을 그대로 따라가보는 여행을 계획했습니다. 집에서 학교, 방과 후 학원, 들르는 문방구, 자주 들리는 놀이터, 그리고 집까지. 이 모든 여정을 아이의 설명과 부모의 지도 정보를 참고하여 구성했습니다. 목적은 단순합니다. 아이의 발걸음과 시선으로 공간을 다시 경험하면, 도시가 얼마나 다르게 보일 수 있을까를 확인해보는 일입니다. 이 .. 2025. 7. 14.
'말' 없이 떠난 하루 언어는 우리가 여행을 하면서 가장 자주, 그리고 가장 무심코 사용하는 도구입니다. 길을 묻고, 커피를 주문하고, 입장권을 끊고,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청하는 모든 순간, 우리는 말을 합니다. 하지만 만약 하루 동안 말을 하지 않고 여행을 한다면 어떤 감각이 남게 될까요? 말 대신 몸짓, 표정, 혹은 침묵으로만 소통하며 도시를 걸어본다면 무엇을 더 느끼고 무엇을 덜 느끼게 될까요?이런 궁금증에서 출발하여 ‘말 없이 여행하기’라는 이름의 실험적 하루를 계획했습니다. 조건은 단순합니다. 여행의 전 구간에서 언어를 사용하지 않기. 대화는 물론이고, 메뉴 주문, 길 안내 요청, 티켓 구매 등 일상의 모든 언어 행위를 가능한 한 배제합니다. 필기도구, 번역기, 스마트폰의 텍스트 입력 기능도 모두 사용하지 않습니다. .. 2025. 7. 7.
낯선 취향에 몸을 맡겨본 여행 여행은 본래 자기 취향을 따라가는 행위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 관심 있는 전시, 익숙한 분위기의 거리, 그 모든 요소들이 결합되어 여행의 동선이 완성됩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개인적 선택을 완전히 내려놓고, ‘타인의 루트를 그대로 따라가보는 여행’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목적은 단순합니다. 내가 아닌 누군가의 감각을 빌려 도시를 경험하면, 전혀 새로운 결이 느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습니다.이 여행은 ‘한 명의 취향을 따라 떠나는 여행’이라는 이름 그대로, 실제 한 사람의 여행 동선을 그대로 따르는 방식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대상은 지인 A씨. 30대 중반, 미술을 전공했고, 혼자서 걷는 산책을 즐기며, 특정 취향이 분명한 사람입니다. 그는 최근 서울에서 하루 동안 다녀온 여행의 기록을 사진과 메모.. 2025. 7. 7.
90년대 지도로 걷는 오늘의 도시 도시는 끊임없이 변합니다. 골목이 사라지고 건물이 들어서며, 익숙했던 간판도 어느새 낯선 브랜드로 바뀝니다. 그러나 과거의 흔적은 지워지지 않습니다. 단지, 눈에 띄지 않을 뿐입니다. 이번 여행은 그런 숨은 흔적들을 찾아가는 여정이었습니다. 출발점은 단순했습니다. 중고서점에서 구입한 ‘1997년 서울시 지도’ 한 장. 그 지도를 들고, 지금의 서울을 걷는 여행. 현재를 과거의 프레임으로 바라보기 위한 일종의 감각 실험이었습니다.지도에는 지금 존재하지 않는 버스 노선, 철거된 동네 이름, 사라진 극장과 시장, 예전의 지하철 출구 번호까지 그대로 담겨 있었습니다. 그 지도를 바탕으로 오늘의 서울을 걸으니, 익숙한 거리조차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그 거리에는 이미 사라진 것들의 잔향이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사.. 2025. 7. 7.
오후 3시에만 걷는 여행 보통 여행은 공간 중심으로 계획됩니다. 어디를 갈지, 어떤 동선을 짤지, 위치 기반의 판단이 우선됩니다. 그러나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간이 아니라, 시간을 중심으로 여행해본다면 어떨까?” 그런 상상에서 시작된 것이 바로 ‘오후 3시만 걷는 여행’이었습니다. 특정한 한 시각, 하루 중 단 한 시간만 허락된 이동. 그 시간에만 걷고, 그 외의 시간에는 정지한 채 머무는 여행이라면, 나는 무엇을 더 선명하게 보게 될까?‘오후 3시’라는 시간은 하루의 한가운데이면서도 이미 절반이 지난 순간입니다. 햇살은 기울기 시작하고, 거리에는 낮과 밤의 기운이 교차합니다. 누군가는 퇴근을 준비하고, 누군가는 아직도 바삐 움직이며, 도시 전체가 어딘가 흐릿해지기 시작하는, 그런 이도 저도 아닌 시간. 이 모호한 .. 2025. 7. 2.
계절마다 다른 얼굴을 가진 도시 한 도시를 4번 방문하며 같은 장소에서 느낀 감정의 변화를 기록하는 것은 여행에서의 ‘시간’을 느끼는 또 다른 방법입니다. 여행지에서 계절은 단순히 날씨의 차이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날씨의 차이와 함께 사람들의 기분, 활동, 풍경, 소리, 그리고 도시를 걷는 리듬까지 모두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한 장소에서 겪은 계절적 변화는 그 장소에 대한 나의 기억과 경험을 확장시키고, 그 안에서 나는 점점 다른 사람, 다른 여행자가 되어 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같은 도시를 겨울, 봄, 여름, 가을에 각각 방문한 경험을 토대로 계절마다 달라지는 여행의 풍경과 감정들을 풀어보려 합니다.겨울 ㅡ 고요한 도시의 숨결, 그 속에서 찾은 온기서울의 겨울은 매서운 찬바람이 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어느새.. 2025. 6.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