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없이 떠난 하루
언어는 우리가 여행을 하면서 가장 자주, 그리고 가장 무심코 사용하는 도구입니다. 길을 묻고, 커피를 주문하고, 입장권을 끊고,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청하는 모든 순간, 우리는 말을 합니다. 하지만 만약 하루 동안 말을 하지 않고 여행을 한다면 어떤 감각이 남게 될까요? 말 대신 몸짓, 표정, 혹은 침묵으로만 소통하며 도시를 걸어본다면 무엇을 더 느끼고 무엇을 덜 느끼게 될까요?이런 궁금증에서 출발하여 ‘말 없이 여행하기’라는 이름의 실험적 하루를 계획했습니다. 조건은 단순합니다. 여행의 전 구간에서 언어를 사용하지 않기. 대화는 물론이고, 메뉴 주문, 길 안내 요청, 티켓 구매 등 일상의 모든 언어 행위를 가능한 한 배제합니다. 필기도구, 번역기, 스마트폰의 텍스트 입력 기능도 모두 사용하지 않습니다. ..
2025. 7. 7.
오후 3시에만 걷는 여행
보통 여행은 공간 중심으로 계획됩니다. 어디를 갈지, 어떤 동선을 짤지, 위치 기반의 판단이 우선됩니다. 그러나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간이 아니라, 시간을 중심으로 여행해본다면 어떨까?” 그런 상상에서 시작된 것이 바로 ‘오후 3시만 걷는 여행’이었습니다. 특정한 한 시각, 하루 중 단 한 시간만 허락된 이동. 그 시간에만 걷고, 그 외의 시간에는 정지한 채 머무는 여행이라면, 나는 무엇을 더 선명하게 보게 될까?‘오후 3시’라는 시간은 하루의 한가운데이면서도 이미 절반이 지난 순간입니다. 햇살은 기울기 시작하고, 거리에는 낮과 밤의 기운이 교차합니다. 누군가는 퇴근을 준비하고, 누군가는 아직도 바삐 움직이며, 도시 전체가 어딘가 흐릿해지기 시작하는, 그런 이도 저도 아닌 시간. 이 모호한 ..
2025. 7. 2.
계절마다 다른 얼굴을 가진 도시
한 도시를 4번 방문하며 같은 장소에서 느낀 감정의 변화를 기록하는 것은 여행에서의 ‘시간’을 느끼는 또 다른 방법입니다. 여행지에서 계절은 단순히 날씨의 차이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날씨의 차이와 함께 사람들의 기분, 활동, 풍경, 소리, 그리고 도시를 걷는 리듬까지 모두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한 장소에서 겪은 계절적 변화는 그 장소에 대한 나의 기억과 경험을 확장시키고, 그 안에서 나는 점점 다른 사람, 다른 여행자가 되어 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같은 도시를 겨울, 봄, 여름, 가을에 각각 방문한 경험을 토대로 계절마다 달라지는 여행의 풍경과 감정들을 풀어보려 합니다.겨울 ㅡ 고요한 도시의 숨결, 그 속에서 찾은 온기서울의 겨울은 매서운 찬바람이 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어느새..
2025. 6.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