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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타는 기분만 내기 챌린지' 체험기

by 아웃델리10 2025. 6. 23.

언제부턴가 '비행기 소리'가 낯설어졌습니다.
창밖을 올려다보다 들리는 날카로운 제트음에 반사적으로 시선을 들던 기억도, 공항 게이트 앞에서 긴 줄을 서며 느끼던 묘한 설렘도, 이제는 먼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코로나19 이후의 세상, 그리고 복잡해진 국제 정세 속에서 여행은 일상에서 한참 멀어졌고,

‘출국’이라는 말은 더 이상 쉽고 가벼운 단어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리움은, 언제나 현실보다 한 발 앞서 마음을 자극합니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기내 영상, 커뮤니티에서 떠도는 항공사 기내식 리뷰, 향수 브랜드에서 내놓은 '공항 향'…

사람들은 여전히 떠나고 싶어 하고, 떠나는 기분을 흉내라도 내고 싶어합니다.

저 역시 그중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비행기를 타지 않더라도, 그 감정은 재현할 수 있다면 해보자.”
이 도전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이름하여 '비행기 타는 기분만 내기 챌린지'입니다.

단 하루, 집에서 비행기처럼 살아보기. 어쩌면 말도 안 되는 시도일지 모르지만,

결과는 예상보다 훨씬 더 즐겁고 인상 깊은 경험이었습니다.

지금부터 그 하루를 나눠보려 합니다.

'비행기 타는 기분만 내기 챌린지' 체험기
'비행기 타는 기분만 내기 챌린지' 체험기

기내식 만들기: 작은 쟁반 위의 세계 여행

비행기의 상징 중 하나는 단연 기내식입니다.
좁은 트레이 위에 놓인 조그만 접시들, 포일을 걷으면 나오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 은근히 정성 가득한 구성. 저는 그 작은 공간 속에서 ‘비행 중’이라는 실감을 가장 크게 느꼈습니다. 그래서 이번 챌린지의 핵심은 기내식 재현이었습니다.

제가 택한 메뉴는 대한항공의 대표 메뉴 중 하나인 불고기 비빔밥이었습니다. 고슬고슬한 밥 위에 간장으로 양념한 소불고기, 볶은 채소와 고추장을 곁들여 작은 은색 트레이에 담았습니다. 그 옆엔 계란찜과 후식용 푸딩, 그리고 음료로는 토마토주스를 올려 마무리했습니다.

트레이는 일회용 식판을 이용했고, 기내용 나이프와 포크는 온라인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습니다. 트레이에 음식을 모두 올리고 ‘기내방송’ ASMR을 틀자, 그 순간 식탁은 기내 테이블로 탈바꿈했습니다.

음식의 맛이 완벽하진 않았지만, 그 정갈한 분위기와 차분한 조도, 그리고 내가 직접 만든 ‘비행기’라는 컨셉이 어우러지며 오히려 특별한 식사가 되었습니다. 입 안 가득 퍼지는 고소한 불고기 맛은, 순간이나마 여행 중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감각을 채우는 연출: 소리, 영상, 조명의 마법

단순히 음식을 차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비행기 안의 분위기는 시각, 청각, 촉각이 함께 작동해야 완성됩니다. 그래서 저는 온갖 감각을 동원해 공간을 재구성해보았습니다.

우선 창밖 풍경을 연출하기 위해 TV 화면에 ‘비행기 창가에서 바라본 하늘 영상’을 재생했습니다. 유튜브에는 실제 항공사에서 촬영한 영상부터 아마추어 촬영 영상까지 다양하게 올라와 있습니다. 저는 ‘이륙 후 창밖 구름 풍경’을 골라 1시간 넘게 틀어두었습니다.

청각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구글에서 ‘기내 ASMR’을 검색하면, 탑승 안내 방송, 이륙 시 엔진 소리, 기내 백색소음 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저는 그중에서도 ‘Welcome aboard’로 시작하는 기내 방송과, 실제 대한항공 기내 라운지 음악을 배경으로 깔았습니다.

조명은 다소 어둡게, 은은한 노란빛 스탠드를 켜고, 담요를 덮고 넥필로우를 목에 둘렀습니다. 주변 소음을 차단하기 위해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을 착용하니, 정말 누군가가 옆자리에서 팔꿈치를 부딪칠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공간이 바뀐 건 아니었지만, 감각을 재구성한 것만으로 저는 분명히 ‘어디론가 향하고 있는 중’이라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여행의 시작과 끝, 그 사이에 흐른 시간

이 챌린지를 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은, 제가 어느새 여행자의 마음으로 바뀌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비록 침대 옆이 식탁이고, 문만 열면 거실이지만, 그 하루 동안 저는 세상 어디쯤을 떠도는 여행자처럼 느껴졌습니다.

사진을 찍고, 셀프 타이머로 기내 셀카를 남기고, ‘탑승 완료’라는 캡션을 붙이며 SNS에 올려보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의 반응은 생각보다 뜨거웠습니다. ‘이런 상상력 너무 귀엽다’, ‘이거 주말에 따라 해보고 싶다’, ‘기내식 진짜 같아서 배고파진다’ 같은 댓글들이 이어졌습니다.

여행은 멀리 떠나는 것만이 아니라는 걸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상상과 연출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그 감정을 다시 불러올 수 있습니다. 어쩌면 여행이란 그 장소 자체보다도, 떠나기 직전의 설렘과 돌아오는 길의 여운, 그 감정의 흐름이 본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음 탑승지는 어디인가요?

‘비행기 타는 기분만 내기 챌린지’는 아주 사소한 일상의 재구성이었지만, 생각보다 큰 만족을 안겨주었습니다. 현실을 잠시 벗어나는 상상, 그 상상이 주는 위안, 그리고 그 위안을 혼자만의 방식으로 연출하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여행이었습니다.

물론 언젠가 다시 진짜 비행기를 탈 날이 오겠지만, 그날이 오기 전까지 저는 또 다른 감각 여행을 떠나볼 생각입니다. 기내식 따라 만들기, 공항 향수 뿌리고 영화 보기, 침대에서 창가 좌석 흉내 내기 등 작지만 확실한 도피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습니다.

혹시 오늘 하루, 당신도 어딘가 멀리 떠나고 싶다면 한 번쯤 해보시길 권합니다.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떠날 수 있다는 것, 우리는 그 방법을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