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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가 말해주는 내 여행의 법칙

by 아웃델리10 2025. 6. 30.

사람은 자신을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특히 여행이라는 감각적이고 즉흥적인 활동에서 우리는 더더욱 ‘이게 내 취향인가?’ 하는 의문을 자주 품곤 합니다. 그런데 만약, 내가 지금까지 다녀온 여행지의 위치기록, 사진 메타데이터, SNS 기록, 검색 로그 등을 분석해보면 어떨까요? 감각적으로 기억하던 여행의 실체가 어떤 패턴을 지니고 있었는지, 내가 선호하는 풍경이나 이동 방식, 머무는 시간대, 심지어 나도 몰랐던 행동 루틴까지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번 글은 지난 몇 년간의 나의 디지털 흔적을 바탕으로 나라는 여행자를 데이터로 읽어보는 실험기입니다. 그 안에서 발견된 의외의 규칙, 되풀이되는 선택, 바뀌지 않는 취향을 통해 여행이란 행위가 내 삶에서 어떤 리듬과 감각으로 작동하고 있었는지를 되짚어보았습니다.

데이터가 말해주는 내 여행의 법칙
데이터가 말해주는 내 여행의 법칙

위치기록으로 살펴본 나의 여행 동선 – 도시보다 도시 주변

가장 먼저 분석한 것은 스마트폰 위치기록입니다. 구글 타임라인 기능을 이용하면, 특정 연도 혹은 월 단위로 내가 어느 지역을 다녀왔고, 얼마나 머물렀는지를 상세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저는 2021년부터 2024년까지의 전체 데이터를 추출해봤습니다. 흥미롭게도 가장 많이 방문한 지역은 대도시의 중심지가 아니라 도시 외곽 혹은 근교 소도시였습니다. 서울, 부산, 대구처럼 이름 있는 도시는 통과하거나 이틀 이하로 머무른 경우가 많았고, 오히려 파주, 강릉 외곽, 충북 제천, 전남 장성처럼 이름이 덜 알려진 지역에 3일 이상 체류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한 위치기록 상 ‘30분 이상 정지한 장소’ 기준으로 따지면 자연공간이나 주거형 숙소 주변에 오래 머무른 기록이 두드러졌습니다. 이는 제가 이동 중심의 여행보다는 정착형 감각에 가까운 여행자를 선호한다는 데이터적 해석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또한 동선의 형태도 일직선보다는 원형에 가까웠습니다. 대부분의 여행은 목적지를 중심으로 ‘반경 3km 이내’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고, 동일 지역을 반복 방문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강릉 지역만 4회 이상 방문했으며, 매번 머무는 동네가 비슷했습니다. 이는 여행이 탐색이라기보다 일종의 ‘정서적 회귀’에 가깝다는 점을 드러냅니다. 나도 모르게 안심할 수 있는 구조, 예측 가능한 감각 속에서 감정을 정돈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해석도 가능해졌습니다. 위치기록은 이동의 선을 그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선이 결국 머무는 방식과 정서적 습관까지도 설명해준다는 점에서 꽤 유용한 데이터였습니다.

사진 메타데이터가 보여주는 나의 시선 – 빛과 공기가 있는 풍경

다음으로 분석한 것은 사진 메타데이터입니다.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에는 촬영 날짜, 시간, 위치, 밝기, ISO 등 다양한 정보가 포함되어 있으며, 이를 연도별로 정리하면 내가 주로 어떤 시간대에, 어떤 장소에서, 어떤 조건의 장면을 기록해왔는지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약 3,400여 장의 여행 사진 중, 제가 가장 많이 사진을 찍은 시간대는 오전 10시11시, 오후 4시6시 사이였습니다. 이 시간대는 자연광이 부드럽고, 그림자가 길어지는 때로, 전반적으로 ‘빛이 좋은 시간’을 선호한다는 시각적 감성이 드러났습니다.

또한 GPS 정보가 있는 사진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대부분이 ‘실내’가 아닌 ‘실외’ 장소에서 찍혔으며, 인물보다는 풍경이나 공간 구성이 있는 장면이 주를 이뤘습니다. 예를 들어 바닷가, 오솔길, 한옥 마당, 카페 창가, 조용한 골목, 우거진 숲길 같은 장소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했습니다. 이 중에서도 창 너머 풍경을 담은 구도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는데, 이는 제가 직접적인 대상보다는 ‘틀 안에서 풍경을 보는 시선’을 선호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다시 말해 사진은 대상 기록이 아닌 시점 기록에 가깝고, 이는 ‘외부의 장면을 내 감각의 프레임에 담아두려는 습관’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사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데이터는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색감’이었습니다. 노란 햇살, 바랜 초록, 짙은 회색빛 바다, 붉은 낙엽 같은 색상이 압도적으로 많았으며, 이는 계절적 취향과도 연결됩니다. 여름보다는 가을, 해가 강한 시간보다는 따뜻한 그림자가 드리운 시간, 그리고 색이 채도보다는 명도 중심으로 정돈된 장면을 선호하는 시각적 루틴이 데이터로 드러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사진은 감정을 담은 이미지가 아니라, 감각을 체계화한 기록이었습니다.

SNS 기록과 리뷰 데이터 – 반복되는 감성 언어

세 번째로 분석한 것은 제가 직접 남긴 SNS 게시물과 리뷰 기록입니다. 인스타그램 포스트와 스토리 기록을 연도별로 정리하고, 텍스트에서 반복되는 단어를 추출했습니다. 가장 자주 등장한 단어는 ‘조용한’, ‘공기 좋은’, ‘차분한’, ‘기억에 남는’, ‘걷기 좋은’, ‘돌아가고 싶은’ 등이었습니다. 이는 장소를 설명할 때 풍경보다 분위기, 감각보다 정서를 중시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또한 ‘맛있다’, ‘인스타 감성’, ‘핫플’ 같은 직접적 평가보다 ‘잘 머물렀다’, ‘조용히 쉬었다’, ‘생각이 맑아졌다’와 같은 정서형 언어가 주를 이루었습니다.

리뷰 플랫폼에 남긴 글들을 분석한 결과도 비슷했습니다. 카페나 숙소 리뷰에서 가장 많이 쓴 표현은 ‘조용해서 좋았다’, ‘사람이 적어서 편했다’, ‘해가 잘 들어서 포근했다’였습니다. 특히 제가 가장 좋았다고 평가한 장소들의 공통점은 공간의 크기보다는 조도, 가구 배치, 색감, 음악의 볼륨 등 매우 미세한 요소들에 반응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는 제가 장소를 선택할 때 ‘무엇이 있는가’보다 ‘무엇이 없는가’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의미일 수 있습니다. 즉 자극보다 여백, 활기보다 차분함, 구조보다 분위기에 집중하는 성향이 드러나는 대목이었습니다.

또한 SNS의 기록 간격도 일정한 주기를 보였습니다. 여행 중 하루에 한 번 이상 기록하는 경우가 많았고, 주로 아침 혹은 밤에 정리하는 패턴이었습니다. 이는 여행을 단순한 경험이 아닌 ‘해석의 시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었습니다.

데이터로 읽은 나, 여행의 감각은 어떤 패턴인가?

이 모든 데이터를 종합해보면 나라는 여행자는 이동보다는 머묾을, 명소보다는 분위기를, 활기보다는 정적을 선호하는 경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감각은 무의식적인 선택이 아니라, 일정한 리듬과 조건을 따라가는 반복 속에서 형성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위치기록이 보여준 원형적 동선, 사진이 드러낸 조도 중심의 시선, 리뷰와 SNS 기록이 보여준 정서적 언어는 모두 내가 여행에서 무엇을 찾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점은, 내가 그동안 추상적으로만 인지하고 있던 감각과 선택들이 모두 데이터의 형태로 증명 가능했다는 사실입니다. 그 안에는 우연도 있었지만, 더 많이는 습관이 있었고, 그 습관은 내가 나도 모르게 여행을 통해 삶의 리듬을 조율하고 있었다는 증거였습니다. 여행은 도피가 아니었고, 발견이라기보다 복기였으며, 외부를 향한 이동이라기보다 내면의 리듬을 정돈하는 반복의 구조였던 것입니다.

 

맺으며

‘데이터로 읽는 나의 여행 패턴’은 단순히 위치기록이나 사진을 모아보는 작업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누구인지, 어떤 감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지, 어떤 방식으로 기억을 구성하는지를 점검해보는 과정이었습니다. 디지털 기록은 감각을 대체할 수는 없지만, 감각을 구조화할 수는 있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여행을 계속 기록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기록은 이제 단지 아름다움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감각의 사람인지를 이해하기 위한 도구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