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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에게 여행을 맡겨봤습니다

by 아웃델리10 2025. 6. 30.

최근 챗GPT를 비롯한 생성형 인공지능의 활용 범위가 빠르게 확장되고 있습니다. 업무 문서부터 교육 콘텐츠, 요리 레시피는 물론이고, 이제는 일상에서의 소소한 의사결정까지 인공지능에게 묻는 것이 자연스러워졌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여행의 기획까지 맡길 수 있을까요?

이번 실험의 목표는 간단했습니다. 여행의 목적지 선정부터 숙소 예약, 동선 구성, 맛집 추천, 짐 준비까지 가능한 한 많은 부분을 챗GPT에게 일임해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나타난 여행의 질감, 장단점, 예측 가능한 패턴과 예외적 발견들까지 세심하게 관찰해보고자 했습니다. 이 글은 그 실험에 대한 기록이며, 동시에 미래 여행 기획의 한 가능성에 대한 탐색입니다.

챗GPT에게 여행을 맡겨봤습니다
챗GPT에게 여행을 맡겨봤습니다

여행의 시작, 챗GPT에게 첫 질문을 던지다

여행을 챗GPT에게 맡기겠다고 결심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나의 조건’을 입력하는 것이었습니다. 출발지는 서울, 일정은 2박 3일, 계절은 초여름, 혼자 떠나는 여행, 붐비지 않으면서 감각적인 장소를 선호하며, 카페와 책방, 조용한 산책로를 포함한 일정이었으면 좋겠다고 정리해 대화창에 입력했습니다. 챗GPT는 곧 여러 후보지를 제안했고, 그중 제가 선택한 곳은 강릉이었습니다. 비교적 접근성이 좋고, 성수기보다는 한산하며, 문학적 분위기와 바다, 로컬 감성이 어우러진 장소라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다음 단계는 동선 구성과 숙소 선택이었습니다. 챗GPT는 일자별 일정표 형식으로 아침, 점심, 오후, 저녁을 나누어 제안했으며, 각 장소는 이동 시간과 위치를 고려한 루트 중심으로 설계되었습니다. 놀라웠던 점은 로컬 서점이나 독립 출판 서점, 조용한 커피 로스터리 등 일반 포털에서 흔히 드러나지 않는 장소들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챗GPT가 리뷰 평점보다는 컨셉과 분위기 중심의 장소를 제안한 덕분에 여행 일정의 감도가 예상보다 높게 조율되었습니다.

숙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는 “호스텔보다 독채형 숙소를 선호하고, 일할 수 있는 조용한 공간이 있으며, 아침 햇살이 잘 드는 구조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는데, 챗GPT는 그 조건을 기반으로 실제 예약 플랫폼의 객실 유형을 분석해, ‘로컬 게스트하우스 독립동’과 ‘바다 근처 감성 민박’을 제안했습니다. 물론 예약 자체는 사용자의 몫이지만, 추천 구조가 매우 정밀하고 실용적이었습니다.

예측 가능한 여정 속 뜻밖의 정서

챗GPT의 일정은 전체적으로 ‘큰 실수 없는 깔끔한 흐름’이었습니다. 하루의 시작은 로컬 베이커리에서 커피와 함께 시작했고, 이어서 조용한 골목길 산책과 독립서점 방문, 바다를 배경으로 한 공간에서의 휴식, 그리고 저녁에는 심야 카페나 해변의 감성 있는 펍으로 이어졌습니다. 여행 중간에 마주친 사람들과의 접촉도 적절했으며, 스스로 동선 조정 없이도 대부분의 장소에서 원하는 분위기와 밀도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여행은 과연 ‘재미있었는가’? 이 질문에 대해 저는 “예상 가능하되 피로하지 않았다”고 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챗GPT의 제안은 대부분 정제되고, 과잉이 없으며, 나를 과하게 움직이지 않게 배려하는 구조였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놀라움이나 충돌이 적은 점은 ‘기억에 남는 순간’이 약하다는 인상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AI가 제시하는 여행은 말하자면 ‘깔끔한 브런치’ 같은 감각입니다. 절제되어 있고, 감각적으로 균형 잡혀 있지만, 조금만 더 거칠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은 잔향이 남았습니다.

예상 외로 인상 깊었던 장면은 챗GPT가 추천한 한 로컬 서점이었습니다. 독립 출판물 위주로 구성된 작은 공간에서 책을 고르던 중, 동네 아이들이 와서 자신의 글을 적은 팜플렛을 설명해주었고, 저는 그 아이들에게 추천받은 시집을 구입했습니다. 이 장소는 큰 명소도 아니고, SNS에 떠도는 장소도 아니었지만, 챗GPT가 로컬 문화 중심으로 구성해 넣은 리스트에서 찾은 곳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장면은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되었고, 알고리즘이 제시한 정보에 내가 감각을 얹은 경우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인공지능 플래너의 장점과 한계

이번 실험에서 확인한 가장 큰 장점은 ‘계획의 효율성과 심리적 피로도의 감소’였습니다. 우리는 여행을 준비하면서 예상보다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씁니다. 숙소 조건 비교, 맛집 검색, 루트 확인, 운영 시간 체크까지 수십 개의 창을 열고 닫아야 합니다. 그러나 챗GPT는 이 복잡한 과정을 몇 번의 대화로 요약해줍니다. “이 근처엔 조용한 책방이 있어요”, “이 카페는 오후 햇살이 예쁩니다”, “이 골목은 카메라를 들고 걷기에 좋습니다.” 마치 감각 있는 친구가 정리해주는 여행 같았습니다.

다만 한계도 분명합니다. 첫째, 정보의 최신성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운영 시간, 임시 휴무, 인기 혼잡도 등의 정보는 반드시 별도 확인이 필요합니다. 둘째, 제안된 장소 간 거리나 지형 특성 등 현장의 체감 정보를 챗GPT는 전달해줄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지도상으론 가까워 보여도 실제로는 언덕이나 계단이 많은 지역일 수 있습니다. 셋째, 추천의 정체성은 결국 기존 사용자 데이터의 반영이며, 진정한 우연성이나 신선한 충돌은 잘 발생하지 않는 구조라는 점입니다.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챗GPT의 플래너 실험은 여행의 사전 계획을 매우 효율적으로 정리해줍니다. 특히 ‘혼자 떠나는 조용한 여행’이나, ‘정보 탐색에 피로를 느끼는 초보 여행자’, 혹은 ‘다양한 컨셉 여행을 동시에 기획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매우 유용한 도구로 작동할 수 있습니다.

챗GPT와 함께하는 다음 여행은 어떤 모습일까

이 실험 이후 저는 챗GPT를 여행 전반의 설계자라기보다, ‘1차 플래너’ 혹은 ‘여행 스캐폴드’로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기획의 기반 구조를 짜주는 도구로 활용하고, 그 위에 내 감각과 즉흥성을 얹는 방식입니다. 예컨대 챗GPT가 짜준 오전 루트를 유지하되, 오후 일정은 현장에서 즉석으로 결정하거나, 추천받은 숙소를 예약한 뒤, 도착 후 동네를 직접 탐색해 새로운 장소를 더해가는 식입니다. 여행의 설계와 실행 사이에 ‘공간’을 남기는 것이 더 만족도를 높이는 요인이었습니다.

챗GPT와 함께한 여행은 마치 백서처럼 정돈된 일정표에서 출발했지만, 결국 그 백서를 인간의 감각으로 수정하고 주석을 다는 방식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이는 앞으로의 여행이 어떻게 변화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인공지능은 더 똑똑해질 것이고, 우리는 그만큼 더 ‘우연의 여지’를 잃어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인간의 감각은 여전히 여행을 여행답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AI가 추천한 장소에서도, 우리는 나만의 길을 발견할 수 있고, 챗GPT가 짜준 일정 속에서도 감각의 틈을 열 수 있습니다.

 

맺으며

이번 실험은 여행이라는 감각적 행위를 AI라는 비감각적 존재에게 일부 맡겨보는 과정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챗GPT는 매우 성실하고 감각 있는 플래너였습니다. 다만 그 감각은 인간의 감정, 날씨, 즉흥성, 타이밍 같은 변수 앞에서는 여전히 빈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빈틈은 곧 여행의 여백이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챗GPT 같은 도구와 함께 여행을 기획할 것이고, 그때마다 인간과 인공지능 사이의 감각 조율이 새로운 여행의 방식이 되어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