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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 하나로 시작된 공동체 여행

by 아웃델리10 2025. 6. 28.

이제 여행은 더 이상 오롯이 혼자, 혹은 가까운 친구와만 떠나는 일이 아닙니다. 디지털 플랫폼과 커뮤니티의 발달은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을 가상 공간에서 실시간으로 연결하고, 그 연결은 종종 물리적인 이동으로 확장되곤 합니다. 이른바 ‘디지털 공동체 기반 여행’. 공통의 태도나 관심, 취향을 중심으로 모인 사람들이 오프라인에서 ‘함께 이동하고 머무는’ 새로운 여행 형태입니다. 저 역시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만난 사람들과의 여행을 시도했습니다. 그 과정은 낯설었지만 동시에 유연했고, 예측할 수 없었지만 깊이 있는 연결감을 안겨주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디지털 공동체 기반 여행이 어떻게 기획되고, 어떤 흐름으로 진행되며, 그 속에서 어떤 새로운 감각이 발견되는지에 대해 기록해보고자 합니다.

DM 하나로 시작된 공동체 여행
DM 하나로 시작된 공동체 여행

공동체에서 출발한 여행 – 관심이 연결이 되는 순간

이 여행의 시작은 단순했습니다. 한 온라인 플랫폼에서 ‘혼자 일하는 사람들의 하루 루틴’을 공유하는 채널에서 활동하던 중, ‘같이 조용히 일할 수 있는 여행지’를 찾아보자는 제안이 올라왔습니다. 이 제안은 공감을 얻었고, 댓글로 이어지던 대화는 곧 슬랙 초대장과 구글 문서로 확장되었습니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은 총 다섯 명. 직업도 나이도 달랐지만, ‘조용한 환경에서 일하며 가볍게 교류하고 싶다’는 공통된 욕구를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여행의 전제는 명확했습니다. 누군가가 리더가 되기보다는 협의와 조율로 구성되는 수평적 구조, 강제된 일정보다는 제안과 선택이 가능한 유동적 루틴, 그리고 ‘관계’보다는 ‘환경’ 중심의 접촉. 말하자면 ‘함께 있지만 간섭하지 않는’ 방식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미리 각자의 업무 리듬과 민감한 지점을 공유했고, 함께 쓰는 공동 노션 페이지에 선호하는 카페 스타일, 식사 시간대, 대화의 빈도까지 기록해두었습니다.

출발 전부터 느껴졌던 점은 이 공동체가 단지 ‘낯선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라, 일종의 ‘디지털 기반 취향 공동체’라는 점이었습니다. 그것은 오프라인에서 만나기 전에도 이미 우리는 서로를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묘한 신뢰를 형성하게 했고, 그 신뢰는 여행 중 많은 문제를 부드럽게 해결하게 해주었습니다. 낯섦과 익숙함이 공존하는 이 연결감은 디지털 공동체 여행의 가장 특징적인 출발점이었습니다.

관계보다 공간에 집중하는 여행 – ‘함께’의 새로운 형식

이 여행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구성원들이 ‘서로에 대해 잘 알 필요가 없다’는 전제 하에 시작된다는 점이었습니다. 여행의 목적은 친구를 사귀거나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루틴을 유지하면서도 같은 환경을 공유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일정은 매우 느슨하게 구성되었습니다.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는 각자 숙소 내 공용 공간 혹은 주변 카페에서 업무를 하되, 대화는 하지 않는다는 규칙이 있었고, 점심은 선택적으로 함께하거나 따로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오후에는 주변을 산책하거나 조용한 장소에서 책을 읽는 식으로 구성원이 자연스럽게 흩어졌다가, 저녁에는 ‘오늘의 사소한 발견’을 공유하는 소규모 대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방식은 기존의 단체 여행과는 매우 달랐습니다. 누군가를 배려하거나, 리더의 계획에 따르거나, 집단 감정에 맞추기보다는, 오히려 ‘함께 있는 개인들’이라는 정체성이 강조되었습니다. 실제로 어느 날은 구성원 중 한 명이 숙소 옥상에서 하루 종일 혼자 머물렀고, 또 어떤 날은 전원이 각자 다른 동네 카페에서 업무를 하다 저녁에만 다시 만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안정감은 상당했습니다. 이는 ‘각자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신뢰 구조’가 디지털 공동체 여행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여행은 ‘장소’를 대하는 태도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전의 여행이 유명 관광지나 인스타그램 명소를 위주로 구성되었다면, 이번 여행에서는 오히려 그 도시의 공공 도서관, 지역의 오래된 빵집, 바닥에 앉아 조용히 일할 수 있는 공원 그늘이 더 중요하게 작용했습니다. 장소가 ‘활동’을 위한 배경으로 존재한 것이 아니라, 감각을 정돈하고 관계의 간격을 설정해주는 프레임이 된 것입니다.

디지털 감각으로 여행을 기억하는 법

재미있는 점은 이 여행에서 ‘기록’이 텍스트 중심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입니다. 사진은 거의 찍지 않았고, 오히려 매일 밤 슬랙에 ‘오늘 내가 했던 생각’ 혹은 ‘지나가며 본 장면’이라는 항목으로 짧은 글을 공유했습니다. 예를 들어 '오늘 카페 창가에 앉은 강아지를 15분간 관찰했다. 그 아이는 고개를 세 번 기울였고, 아무것도 짖지 않았다.' 같은 기록들이 대화로 이어졌습니다. 이는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로 시각 중심의 기억을 남기던 기존 여행 방식과는 전혀 다른 형태였습니다.

또한 여행이 끝난 후에도 이 커뮤니티는 해산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여행이라는 ‘물리적 만남’이 디지털 공동체를 더욱 응집력 있게 만들었습니다. 이후에도 같은 구성원이 ‘가벼운 제주 워케이션’을 제안했고, 또 다른 사람은 ‘가을엔 고성 쪽 바다 근처 조용한 독서 여행’도 기획해보자고 말했습니다. 결국 여행은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공동체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연결 장치가 되었고, 감각의 공유는 디지털 상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방식은 디지털 공동체의 특성과도 잘 맞습니다. 깊이보다는 빈도, 유대보다는 느슨함, 강제보다는 선택 중심의 구조는 온라인 기반 커뮤니티가 지닌 특징이기도 하며, 그 유연함이 여행이라는 행위와 결합했을 때 불필요한 긴장 없이도 충분한 연결을 형성할 수 있게 합니다.

앞으로의 여행, 공동체와의 느슨한 연대 속에서

이 실험은 단순히 새로운 여행 방식의 소개가 아니라, 앞으로의 ‘관계 방식’과 ‘공간 감각’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사람들은 이제 하나의 그룹으로 묶이지 않아도 되고, 하나의 목표를 공유하지 않아도 됩니다. 대신 같은 공간에서 각자의 리듬으로 살아갈 수 있는 유연한 구조 속에서 오히려 더 자연스럽고 건강한 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경험하게 됩니다.

디지털 공동체 여행은 단순한 모임이 아닙니다. 그것은 ‘기능 중심의 연대’이며, 같은 장소를 다르게 감각하는 사람들의 공존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친해서 같이 가는 여행’만을 상상하지 않아도 됩니다. 같은 태도를 지닌 사람들과의 조용한 연결, 같은 시간대를 사는 이들과의 느슨한 동행은 우리가 지금 가장 필요로 하는 형태의 여행일지도 모릅니다.

 

맺으며
‘디지털 공동체로 떠나는 여행’은 빠르게 변화하는 삶의 방식 속에서 새로운 감각과 관계를 실험할 수 있는 구조였습니다. 그 안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함께했는지가 아니라, 어떤 태도로 머물렀는가였습니다. 물리적인 거리보다 감각의 간격이 중요해진 지금, 이 느슨한 여행의 방식은 앞으로 더 넓게 확산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언제든 연결 가능한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경험하는 것, 그것이 이 여행이 남긴 가장 깊은 감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