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여행은 종종 '기록'이 먼저 떠오릅니다.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먼저 휴대폰을 꺼내고, 풍경을 마주하면 가장 먼저 필터를 고릅니다.
인스타그램이라는 플랫폼은 여행의 순간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문화를 만들었고,
우리는 그 안에서 ‘보여지는 여행’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나는 무엇을 위해 이 장면을 기록하고 있는가? 공유하지 않는 풍경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그렇게 시작된 작은 실험, 바로 ‘인스타 없이 여행해보기’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그 실험이 가져온 변화, 불편함과 해방감, 그리고 진짜로 기억에 남는 것들에 대해 정리해보았습니다.
‘찍지 않으면 사라진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기
인스타그램 없이 여행한다는 것은 단순히 SNS 업로드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기록의 우선순위를 다르게 설정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사진을 통해 무언가를 ‘소유’합니다. 찰나의 장면도, 접시에 담긴 음식도, 낯선 거리의 창틀 하나도 기록 버튼 하나로 영원히 내 것이 됩니다. 그러나 그 기록은 때로 경험을 절단합니다. 카메라 렌즈를 들이대는 순간 우리는 관찰자가 됩니다. 시선은 화면 안의 구도에 갇히고, 냄새나 소리, 온도 같은 감각은 뒷전으로 밀려납니다.
이번 여행에서 저는 하루에 한 번도 카메라를 들지 않기로 했습니다. 휴대폰은 가방에 넣어두고, 손에는 작은 수첩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풍경이 예뻐 보일 때마다 그 장면을 단어로 남겼습니다. 예컨대 “5월 오후 4시 / 파란 기와 옆 나팔꽃 / 바람이 향을 실어오다”와 같은 식입니다. 이는 사진보다 느리고 불완전하지만, 훨씬 더 적극적인 감각의 기록이었습니다. 사진은 잊게 하지만 언어는 기억하게 했습니다.
무언가를 ‘찍어야만 남는다’는 생각은 우리를 조급하게 만듭니다. 사람들은 더 많은 장면을 남기기 위해 더 빠르게 움직입니다. 그러나 카메라가 없으면 우리는 그 자리에 조금 더 오래 머뭅니다. 몇 분 더 바라보고, 몇 걸음 더 천천히 걷습니다. 그런 느린 경험이야말로, 여행의 진짜 얼굴이었습니다.
‘좋아요’를 계산하지 않는 여행의 자유
인스타그램은 소통의 도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평가의 무대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사진을 올린 후 좋아요 개수에 따라 그 장면의 가치가 결정되는 듯한 기분을 느낍니다. 어떤 사진은 기대보다 반응이 적어 실망하고, 어떤 사진은 의외로 반응이 커서 기분이 좋아지기도 합니다. 문제는 그러한 반응의 축적이 우리의 여행 방식에 영향을 준다는 점입니다.
제가 방문했던 어느 작은 골목길 카페는, 검색하면 지도에도 거의 나오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날의 기분은 그 골목에 끌렸고, 내부의 조용한 조명과 커피 향이 제 취향에 너무 잘 맞았습니다. 만약 인스타그램에 올릴 생각이었다면, 아마 외관이 더 예쁜 곳이나, 조명이 더 밝은 곳을 선택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기록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진짜의 선택’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또한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도 달라진 점이 있었습니다. 이전에는 여행지에서 ‘사진 찍어줄까?’라는 말을 자주 듣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 순간의 나를 ‘증명’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대신 저는 더 많은 눈을 마주치고, 더 많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디지털 이미지 대신 직접적 경험이 나를 증명해주는 구조. 그것이 이 실험의 가장 큰 해방이었습니다.
‘보여주기’ 대신 ‘느끼기’ 중심의 감각 복원
인스타그램 중심의 여행에서는 시각이 압도적인 감각으로 작동합니다. 화면을 위한 구도, 채도를 위한 조명, 포즈와 표정이 모든 감각을 밀어내고 가장 앞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여행은 원래 다감각의 경험입니다. 공기의 온도, 골목의 냄새, 바닥의 질감, 음식의 짠맛까지. 인스타그램이 그 모든 감각을 단일한 프레임으로 환원시키는 데 익숙해진 우리는 어느 순간 감각의 편식을 하게 됩니다.
이번 실험의 일환으로 저는 ‘감각별 여행 기록’도 병행했습니다. 냄새가 인상적이었던 거리, 손끝에 닿은 질감이 특별했던 물건, 귀를 간질였던 거리 음악 등을 단어로, 문장으로, 때로는 그림으로 남겼습니다. 예컨대 담쟁이 넝쿨이 타고 올라간 붉은 벽돌 건물의 표면은 햇볕을 머금은 듯 따뜻했고, 인근 도넛 가게에서는 바닐라향이 섞인 기름 냄새가 풍겼습니다. 이러한 감각 기록은 사진으로는 남기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놀라웠던 점은 ‘감각의 확장’이었습니다. 우리는 보통 보이는 것을 먼저 기억합니다. 그러나 시각이 줄어들자 다른 감각이 부상했습니다. 맛이 더 강하게 느껴지고, 소리가 더 선명하게 들렸으며, 냄새가 더 뚜렷하게 남았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쌓여 하나의 풍경이 되었고, 사진이 없었지만 그 기억은 더 생생했습니다.
디지털 없이도 충분히 여행할 수 있다는 확신
이 실험을 통해 저는 디지털 없이도 충분히 여행을 설계하고 경험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물론 실시간 지도, 번역기, 정보 검색 등은 분명한 편의를 제공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그 편의가 감각의 수동화를 불러오기도 합니다. 길을 찾는 대신 표지판을 읽고, 시간을 확인하는 대신 종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리뷰 대신 직접 발로 확인하는 방식은 능동적이고 몰입적인 경험으로 이어졌습니다.
물론 불편한 점도 많았습니다. 길을 헷갈렸고, 식당을 선택하는 데 시간이 더 걸렸으며, 때때로 ‘내가 잘하고 있는 건가?’ 하는 의문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불확실성이야말로 여행이었습니다. 정해진 경로가 아닌 내가 만든 루트를 따라간다는 점, 선택과 판단이 나에게 있다는 점이 여행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무엇보다 ‘나만의 방식으로 기억하는 법’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여행이 아니라, 오롯이 나 자신에게 남기기 위한 여행. 그것이 인스타 없는 여행의 가장 큰 의미였습니다.
맺으며
우리는 너무 많은 장면을 남기느라, 정작 기억할 장면을 놓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인스타그램 없는 여행은 그런 감각을 되찾는 실험이었습니다. 그 여행은 더 느렸고, 더 불확실했으며, 더 조용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진짜가 있었습니다. 오늘 하루, 휴대폰을 가방에 넣고 걸어보는 건 어떨까요? 찍지 않아도, 남기지 않아도, 진짜 여행은 시작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