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기억하는 방식은 대부분 시각적입니다.
명소의 모습, 거리의 구조, 건축물의 형상과 색감 등은 모두 눈으로 보이는 정보를 중심으로 각인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실제로 도시를 느끼는 데에 사용하는 감각은 훨씬 더 복합적입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소리’는 도시의 리듬과 분위기를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요소입니다.
흔히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라 불리는 이 개념은, 특정 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소리 환경을 의미합니다.
도시의 소리를 인식하고 기록하는 행위는 곧 그 도시의 정서와 구조, 속도를 감각적으로 이해하는 일과 맞닿아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소리’를 중심으로 한 여행 경험의 방식과,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도시의 청각적 표정을 자세히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도시의 얼굴은 소리로도 만들어진다
도시라는 공간은 소리로 끊임없이 말을 걸어옵니다. 아침의 차량 경적, 오후의 자전거 벨, 이른 저녁 골목을 울리는 상점의 셔터 소리, 밤의 대화 소리와 에어컨 실외기 진동음까지, 각 도시마다 하루를 채우는 소리는 분명한 고유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서울 명동의 북적임은 인파의 소리와 팝 음악이 섞인 혼합음이며, 도쿄 시부야의 사운드스케이프는 전자음과 철도 진입음이 만들어내는 빠른 박동으로 형성됩니다. 반면 포르투의 구시가지에서는 노면 전차의 쇳소리와 오르막길을 오르는 신음 같은 차량 엔진음이 도시의 경사를 그대로 반영해냅니다.
이처럼 도시는 그 지형과 구조, 사람들의 움직임, 사회적 질서에 따라 소리를 만들어내고, 그 소리들이 도시의 분위기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가 됩니다. 여행지에서의 첫인상이 시각이라면, 그 공간에 머무르며 축적되는 정서는 청각을 통해 정리됩니다. 특정 거리를 걷다가 느꼈던 차분함이나, 마을을 지날 때의 불편함, 혹은 광장에서의 기대감과 생기는 흥분감은 모두 해당 공간의 소리 환경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소리로 장소를 기록하는 방법
소리로 여행을 기록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먼저, 스마트폰의 녹음 기능이나 사운드 메모 앱을 활용하여 1~2분 정도 주변의 소리를 그대로 기록합니다. 이때 장소에 따라 다른 시간대를 설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예컨대, 아침 시장 골목과 늦은 오후의 주택가, 저녁 시간대의 버스정류장은 전혀 다른 사운드스케이프를 제공합니다. 장소를 이동하면서 같은 방식으로 소리를 누적하다 보면, 여행지의 하루가 하나의 ‘청각 지도’로 남게 됩니다.
기록 이후에는 메모와 함께 정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녹음한 위치, 시간, 당시 날씨, 사람의 밀도 등 몇 가지 조건을 덧붙이면 해당 소리에 대한 해석이 보다 풍부해집니다. 예를 들어, 프라하 카를교 위에서 녹음한 음원에는 거리 악사와 구걸하는 사람의 목소리, 관광객들의 웃음소리와 강 아래를 지나는 유람선의 경적이 함께 담기며, 이는 이 도시의 관광성과 동시에 현실적인 이면까지도 함께 기록하는 역할을 합니다.
또한 소리의 구체적인 ‘레이어’를 인식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가까이 들리는 발걸음과 멀리서 흐르는 음악, 왼쪽 귀에 들어오는 택시의 엔진음과 오른쪽에서 들려오는 대화 소리는 위치와 시간에 따라 층위를 다르게 형성합니다. 이러한 층위를 감지하는 능력이 향상될수록, 여행자는 장소의 구조를 더욱 깊이 있게 인식하게 됩니다.
관광지보다 골목에서 들리는 것들
사운드스케이프는 가장 인위적인 환경보다는, 오히려 일상성이 묻어나는 장소에서 더 풍부하게 감지됩니다. 예컨대 도시의 대형 광장이나 중심가보다, 주변의 작은 골목이나 로컬 시장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그 도시의 실질적인 감정을 담고 있습니다. 서울 익선동 중심에서는 관광객들의 말소리와 카페 음악이 주를 이루지만, 그 뒤편 주거 골목에서는 고양이 발소리, 옆집의 텔레비전 소리, 가끔 울리는 전기통신차량의 사이렌이 더 생생하게 도시의 흐름을 드러냅니다.
소리로 여행한다는 것은 시선을 멈추고 귀를 여는 일입니다. 골목 끝을 바라보는 대신, 그 골목을 가로지르는 자전거의 체인 소리와 이웃 간의 인사말,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의 잎사귀 마찰음을 듣는 것이 하나의 풍경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청각 중심의 관찰은 시각에 의존한 소비 중심 여행에서 벗어나, 장소의 존재감을 감각적으로 회복시키는 방식입니다.
또한 소리를 듣는 방식에는 문화적 해석이 포함되기도 합니다. 유럽의 노천카페에서 들리는 잔잔한 대화 소리와 접시 부딪힘은 여유로움과 생활의 미학을 느끼게 하지만, 동남아의 시장에서 들려오는 가격 흥정과 상인들의 고함은 생존과 생동감의 리듬으로 다가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단지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해석하고 공간을 이해하는 복합적인 체험을 하게 됩니다.
사운드스케이프가 만들어내는 정서적 기억
여행이 끝난 후에도 도시의 소리는 우리의 기억에 오래 남습니다. 눈으로 본 장면은 시간이 지날수록 흐려지지만, 특정 소리는 의외로 선명하게 떠오르곤 합니다. 여행에서 들었던 라디오 방송의 멜로디, 식당에서 흘러나오던 노래, 창 밖을 스치던 비 오는 소리 등은 오히려 장소 자체보다 더 강렬한 기억의 방아쇠가 되기도 합니다. 이는 청각이 뇌의 감정 기억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경험은 여행 이후에도 소리로 장소를 다시 만나는 계기를 제공합니다. 예를 들어, 녹음한 도시의 소리를 이어폰으로 들으며 산책하거나, 여행 중 들었던 음악을 출근길에 다시 재생하면 일상 속에서도 여행의 정서를 다시 불러올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향수 이상의 기능으로, 감각적 연결고리를 회복시키는 감정적 리추얼로 작용합니다.
사운드스케이프는 그 자체로 하나의 여행 기록입니다. 우리는 여태까지 주로 사진이나 영상으로 여행을 남겨왔지만, 청각이라는 감각을 통해 축적한 기억은 훨씬 더 세밀하고 감정 중심적이며, 개인적인 기록이 됩니다. 정적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흐름을 포착하는 이 방식은 도시를 여행하는 또 하나의 유효한 방법으로 기능합니다.
맺으며
소리로 여행한다는 개념은 아직 대중적이지 않지만, 감각적 깊이와 체험의 농도 면에서 무척 가치 있는 시도입니다. 눈으로만 본 도시는 표면에 머무르지만, 귀로 들은 도시는 내면에 머뭅니다. 다음 여행에서는 지도와 사진을 잠시 내려놓고, 이어폰 대신 귀를 열어보시길 권합니다. 그곳에는 이름 없는 소리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며, 당신만의 도시가 조용히 형성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